간행물

오피니언

[오피니언7호] 이현주 - 노인은 왜 경제적 학대의 대상이 되는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57회 작성일 21-03-04 10:45

본문

d8827ec91660b35d21072e772bd4719c_1614822262_3543.JPG
주) 이 글은 "한국취약노인지원재단(2020). 취약노인 재산관리서비스 모형개발에 관한 연구"의 일부분을 수정한 것임. 
  

노인에 대한 경제적 학대


경제적 학대는 노인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학문적, 실천적으로 간과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 학대에 대해서는 국가별로 또 연구마다 다소 상이한 정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문제의 규모도 정확히 추산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학대 유병률은 연구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 실정인데,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 연구에서 유병률은 6.8%로 보고된 바 있다(Yon et al., 2017). 개념이나 판정지침 및 유병률에 대해서는 상당한 편차가 있지만, 실제 문제 규모에 비해 극히 일부만이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치하고 있다(Dessin, 2000; Kemp and Mosqueda, 2005).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경제적 학대를 판정하는지 살펴보자. 노인보호전문기관 업무수행지침에는 경제적 학대에 대해 노인의 의사에 반()하여 노인으로부터 재산 또는 권리를 빼앗는 행위로서 경제적 착취, 노인 재산에 관한 법률 권리 위반, 경제적 권리와 관련된 의사결정에서의 통제 등을 하는 행위로 정의되어 있다. 경제적 학대의 판정지표는 다음과 같다. 1) 노인의 소득 및 재산, 임금을 가로채거나 임의로 사용한다, 2) 노인의 재산 사용 또는 관리에 대한 결정을 통제한다, 3) 노인의 재산에 관한 법률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한다. 종합하면 직접적인 이득을 취하는 경제적 착취뿐 아니라, 의사결정 및 자기결정권에 대한 통제, 재산권 침해 등 재산권리를 빼앗는 행위를 포괄하고 있다(보건복지부, 2015).

 

인구고령화와 함께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치매나 기능장애로 경제적 학대에 취약한 노인들의 수는 증가할 것이다. 특히 치매유병률은 65세 이상에서는 9.5%, 85세 이상에서는 약 38%로 연령과 함께 치매유병률도 급격히 증가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적 학대 피해도 빠르게 증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년기에 신체건강 악화나 치매로 인해 기능장애가 발생한 경우 노인은 독립적인 생활이 점차 어려워지고 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된다.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재산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든든한 가족이 있고 그 울타리 속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노인은 가장 약해진 시간들을 가족에게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독거노인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전체 노인의 23.6%가 노인독거가구이고, 48.4%가 노인부부가구로, 노인으로만 구성된 가구가 전체 노인의 72%에 이른다(보건복지부, 2017). 독거노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취약한 것은 아니다. 혼자 살지만 자녀와 충분히 소통하고, 친구나 이웃과 충분히 교류한다면 위험은 감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에게 치매나 기능장애가 발생한 경우에는 경제적 학대의 표적이 되기 쉽다. 무엇보다 비대면 금융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노인의 재산관리는 더욱 어려워졌고, 신종 금융사기 수법들은 교육과 기술, 정보에서 이미 불리한 지위에 있는 노인들을 노리고 있다.

 

어떠한 맥락에서 경제적 학대가 발생하고 왜 지속되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경제적 학대에 대한 정책적, 실천적 함의를 모색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음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이 저하된 후기 노년기, 거동이 힘들어지고 기억력과 판단력이 더는 이전처럼 작동하지 않는 그때에, 돌봄이 절실하지만 의지할 가족이 없는 노인들이 어떠한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왜 공적인 개입이 어려운지, 우리는 무엇을 바꾸고 시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시급한지 보여주고 있다.

 

돌봄인가, 학대인가


타인의 돌봄을 받아야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노인에게 가장 가까이에서 재산을 갈취하면서 최소한의 돌봄만 제공한다면 이것은 돌봄인가 학대인가. 생에서 가장 약해진 시기, 지켜줄 가족도, 지지체계도, 정보도 없이 하루하루가 막막한 노인에게 이들은 내 재산을 갈취해가는 가해자가 아니라 아무도 의지할 이 없는 세상에서 나를 찾아와주고 돌봐주는 너무나 고마운 존재가 된다.


d8827ec91660b35d21072e772bd4719c_1614822572_1484.JPG
d8827ec91660b35d21072e772bd4719c_1614822617_7012.JPG
 

이모의 임대아파트에 갑자기 나타나서 이모의 수급비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담배와 술을 사는, 심지어 공과금도 밀린 상황에서 조카가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거동이 불편한데 가족이 없는 막막한 상황에 놓인 독거노인의 일상생활을 도우며 은행에서 큰돈을 빼가는 스님의 행동도 분명 석연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는 두 사례 모두 경제적 학대로 판정할 수 없었고 그 어떤 개입도 할 수 없었다. 식사를 챙겨드리고 식료품을 구입하는 등 정말 최소한의 돌봄은 이루어지고 있고, 무엇보다 어르신이 이들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인식하고 개입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르신에게는 내 수급비를, 내 통장의 돈을 좀 빼가는 것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가족도 없는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드는 내가 홀로 남겨지는 것이다. 그 두려움과 공포에 비한다면 살 날도 얼마 안 남은 내게서 돈 얼마 가져가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본인의 돌봄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돌봄과 착취가 교묘히 섞여 있어서 언뜻 보면 돌봄이지만 이것은 인간의 가장 연약함을 악용한 착취이다.

 

경제적 학대는 오랜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경제적 학대는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내 일상생활을 지켜주고 나를 보살펴주는 사람에게 친밀감과 고마움을 느끼고 의지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치매나 인지저하가 생긴 경우 문제상황을 인지하기도, 대처하기도 어려워진다. 초고령기에 접어들어 사회관계망이 축소되고 점차 고립됨에 따라 문제가 외부에 발견되고 공적 서비스 체계에 노출되기도 어렵다. 아래 사례와 같이 고령의 노인부부에게 오랜 시간 돌봄을 제공하며 친밀감이 형성된 관계의 경우 문제가 외부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그 신뢰관계 속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d8827ec91660b35d21072e772bd4719c_1614822674_7666.JPG
 

중증치매노인이 부동산을 매각하려고 한다. 매수인은 이 치매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아들이다. 치매노인은 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남편은 본인이 거래에 동의했다는 입장이고, 요양보호사는 90대의 할아버지가 치매가 아니라는 진단서를 발급받았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공인중개사도, 동주민센터도, 노인보호전문기관도 모두 석연치 않지만, 치매가 아닌 성인이 자발적으로 거래를 하겠다는 상황에서 그 거래를 막을 방법도, 분명한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 사례는 종결된다.


인지저하는 있지만 치매는 아니고 의사표현이 가능한 대상자에게 어디까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친밀한 신뢰관계가 형성된 관계에서는 아무리 공공기관이라도 개입의 여지가 적어진다. 그러나 대상자와 요양보호사 간에 금전거래가 진행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액의 금전거래를 넘어서 부동산 매매가 시도되고 있다. 공식적인 돌봄제공자 본인 및 가족과 대상자 간의 금전거래는 금지되어야 한다. 재산을 처분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하는 어르신의 뜻은 존중하되, 요양보호사 본인이나 본인의 가족이 아닌 제3자에게 부동산을 처분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요양보호사의 윤리에 부합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노인도 돌봄제공자도, 주변인들도 정확히 무엇인 문제인지 모호하고, 개인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지기 때문에 대상자와 요양보호사 모두에게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경제적 학대 판정의 어려움과 한계


앞서 제시된 경제적 학대의 정의를 다시 살펴보자. 전제조건이 있다. ‘노인의 의사에 반하여이루어질 때 비로소 경제적 학대가 된다. 판정지표에도 노인의 허락 없이라는 기준이 거의 모든 항목에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타인의 도움이 있어야만 하루하루의 삶이 가능한 노인에게, 가족이 없고 의지할 이 없어 다른 대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독거노인에게, 인지손상으로 인해 기억하고 이해하며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해가는 노인에게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현실에 부합하는지, 얼마나 많은 피해상황이 어렵게 발견되고도 다시 무기력하게 덮여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필요한가

 

앞으로 우리는 노인에 대한 경제적 학대에 대해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의나 판정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학대가 본질적으로 복잡한 구조와 역동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쩌면 앞으로도 충분한 이해나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야 하고, 현실에 부합하는 실효성 있는 제도와 서비스를 갖추어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를 볼 때 경제적 학대에 대한 대응 노력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적 학대 가해자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밀한 관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사후처벌보다는 예방적 관점에서 인식개선, 교육이나 홍보, 사회적 고립의 방지 등 보다 보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가정, 시설의 양분화된 선택지가 아니라 지역사회돌봄서비스를 강화하고, 허약해진 노인도 강도 높은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집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스펙트럼의 주거환경을 갖추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경제적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에서 독거노인이나 치매노인을 위한 사회서비스가 비교적 체계를 갖추며 확장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재산관리를 통한 생활지원서비스는 부재하다. 고령노인이 지역사회에서 가능한 오래 생활할 수 있도록, 또는 시설에 입소했다 하더라도 최대한 본인의 욕구가 따라 지출이 이루질 수 있도록 재산관리와 지출을 돕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핵심은 의사결정과 판단능력이 있을 때 미리 재산관리 및 지출과 관련된 본인의 선호, 욕구, 의사 등을 표명함으로써 미래에 의사결정능력이나 판단능력이 없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저소득 취약노인을 위해 안전하고 촘촘하게 제도화된 재산관리지원서비스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의 선호와 욕구가 반영된 삶을 누리도록 돕는 안전장치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보건복지부. (2015). 노인보호전문기관 업무수행지침. 

보건복지부. (2017). 노인실태조사.

Dessin, C. L. (2000). Financial abuse of the elderly. Idaho Law Review, 36, 203-226.

Yon et al. (2017). Elder abuse prevalence in community setting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Lancet Glob Health, 5(2), e147-e156.

Kemp, B. J., and Mosqueda, L. A. (2005). Elder financial abuse: An evaluation framework and supporting evidence. Journal of the American Geriatrics Society, 53(7), 1123-1127.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