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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6호] 박재우 - 정신장애인의 복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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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1회 작성일 21-02-1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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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장애인의 사회통합과 복지권


모든 사람은 지역사회 안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물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최저 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있어야 하고,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필요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삶이 유지될 수 있다.

 

복지권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자신의 힘만으로 채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엄한 삶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을 국가에 요구할 권리를 말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는 모든 국민의 권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도 복지권의 주체이다. 정신장애인이라고 하면 정신질환, 정신병원, 약물과 치료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 이러한 치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좋은 치료는 당사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정신장애를 가지고 지역사회 내에서 보편적인 시민의 삶을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신건강복지정책과 서비스의 목적()이며, 이를 사회통합이라고 한다.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통합을 위해서는 당사자의 책임(personal responsibility)과 사회적 기회(social opportunity)가 필수조건이다. , 당사자는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하며, 지역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접근성을 높여가야 한다. 이러한 줄탁동시(啐啄同時)가 이루어져야 사회통합이 촉진된다.

  

회복(recovery) 관점에서 보면 당사자가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지원하는 것은 치료(treatment)서비스이며, 사회가 당사자들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복지서비스 제공에 해당 된다. 이는 정신장애인 욕구조사 결과가 크게 치료 욕구복지서비스 욕구로 대별되어 나타나는 것과 일치한다. 치료(treatment) 서비스에는 정신치료, 약물처방, 사례관리, 입원, 동료지원과 동료상담, 보완대체의학 활용, 자조계획 수립 등이 포함된다.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우리나라 정신보건정책의 최종 목표는 약물처방, 입원, 사례관리를 통한 증상의 완화 또는 제거를 통해 병든 정신을 고쳐서 사회에 돌려보내면 당사자가 발병 이전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치료를 통한 지역사회정신보건 실현이었다.

 

치료를 통한 정신질환자의 사회복귀라는 목표는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치유(cure)를 지향하는 치료(treatment)의 약속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질환은 단일 기저의 생물학적 원인을 가지며, 그 원인이 제거되면 건강한 상태로 돌아간다는 생의학 모델의 핵심 가정은 정신질환에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둘째, 치료를 통한 증상 제거를 사회적 개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게 되면, 치료 서비스는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강제된다. 지난 25년간 정신보건 영역의 인권 이슈가 자유권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치료만으로는 지역사회통합을 이뤄내기에 역부족이다. 회복과 사회통합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려는 당사자의 노력과 당사자를 끌어안으려는 사회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실재화된다.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을 끌어안는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당사자에게 사회 속으로 들어가라고 등 떠미는 데만 집중해 왔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회복과 사회통합에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회복과 사회통합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부과함으로써 비난 가능성을 당사자에게 돌리도록 만든다.

 

치료 서비스만으로는 사회통합도, 당사자의 인권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은 상식이 되었다. 이미 2001년에 WHO정신보건서비스 만으로는 정신장애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며 교육, 건강, 직업, 주거, 법적 서비스와 복지서비스를 포함해야한다라고 천명하였으며, 정신건강정책의 실행계획을 담고 있는 WHO MENTAL HEALTH ACTION PLAN 2013~2020에서도 첫 번째 목표로 보건의료정책과 복지서비스, 주거 정책, 교육 등을 포괄적으로 조정해 낼 수 있는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2. 정신건강과 복지권


정신건강과 복지는 단절된 개념이 아니다. 정신건강이란 단지 정신질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WHO의 정의에 따르면, 건강이란 완전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 상태이며 단지 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정신건강이란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삶에서 발생하는 정상적 범위의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으며, 생산적으로 일을 하여 결실을 맺을 수 있고, 개인이 속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안녕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증상은 가로축이, 삶의 질은 세로축이 된다. 이렇게 4분 면이 만들어지면 1번은 증상이 안정되고 삶의 질도 높은 그룹, 2번은 증상은 불안정하나 삶의 질은 높은 그룹, 3번은 증상은 안정적이나 삶의 질은 낮은 그룹, 4번은 증상도 불안정하고 삶의 질도 낮은 그룹이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정책에는 가로축만 존재했다. 증상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정신건강정책과 서비스의 최우선 목표이자 과제가 되다 보니 정신과 약 복용만 강조하게 되고 삶의 질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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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의 복지권을 얘기하는 건 삶의 질이라는 세로축을 세우자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단지 증상관리만이 아니라 삶의 안녕 수준도 높이는 정신건강복지정책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이건 복지를 얘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WHO에서 정의하는 건강 및 정신건강의 개념에도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 된다. 

 

3.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은 어떤가?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가 몇 가지 있다. 먼저,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중 생계급여 수급권자의 비율을 보면 정신장애인이 54.7%로 전체 15개 장애유형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급권자 비율이 과반을 넘는 것은 정신장애밖에 없으며, 이는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뇌전증장애인에 비해서도 20%가 더 높다. 의료급여 수급권자 비율 또한 57.7%로 가장 높으며, 살고 있는 집의 자가 소유율은 뇌전증장애 다음으로 낮다.


장애등록이 된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실태조사의 결과만 이런 것이 아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거주·치료 실태조사는 장애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정신장애인의 취업 상태는 무직이 57.6%로 가장 많았고, 취업자 중에서도 보호작업이 16.0% 임시적 불안정 근로가 17.8%이며 정규직은 7.7% 밖에 되지 않았다. 동일 조사에서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0.4%는 퇴원 후에 살 곳이 없고, 혼자서 생활하기가 어렵고, 지역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없고, 가족이 원하지 않아서 퇴원하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병 때문에 퇴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받아 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퇴원을 못하는 것이다.


반면 정신장애인의 교육 수준을 보면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비율이 15개 장애 유형 중 간장애를 가진 사람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런 지표를 종합해 보면, 정신장애인은 교육 수준은 매우 높은데 가장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따라오게 된다.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데,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은 왜 이런가? 정신질환 치료에서의 높은 의료 수준과 정신장애인의 낮은 삶의 질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약 만으로 정신장애인의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없으며, 정신장애인의 낮은 삶의 질은 치료의 빈곤이 아니라 복지의 빈곤이 초래한 결과인 것은 명확하다.

 

4. 정신장애인 복지권 강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


현시점에서 정신장애인의 사회권을 보장하고 타 유형의 장애인과의 복지차별을 해소하는 제도적 개선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정신건강복지법을 통한 복지권 강화 방안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오로지 의료의 대상으로만 정의되어 왔던 정신장애인을 복지서비스의 대상으로도 규정하고 있다. ‘4장 복지서비스의 제공장이 신설된 것이다. 여기에는 복지서비스의 개발, 고용 및 직업재활 지원, 평생교육 지원, 문화·예술·여가·체육활동 등 지원, 지역사회 거주·치료·재활 등 통합 지원, 가족에 대한 정보제공과 교육이 담겨 있다.

 

그러나 2017. 5. 30.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된 이후 정신장애인의 복지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 복지가 법에는 담겼지만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만들어진 데는 정신건강복지법 하위법령(시행령, 시행규칙)을 매우 소극적으로 만들고 국가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복지서비스 제공을 사문화시켜버린 보건복지부의 책임이 크지만, 복지서비스의 내용과 실현 방식을 제안하고 요구했어야 할 정신건강사회복지 전문가들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부터라도 제4장 복지서비스 제공의 내용과 공급 방식을 구체적으로 담은 하위법령 개정안을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정책 제안을 하고, 지자체 단위에서 복지서비스 제공의 법적 근거를 담은 조례 제정 운동을 통해 지역별 복지서비스 제공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예산확보를 위한 실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장애인복지법 제15조를 삭제하고 지역사회 복지 전달체계를 장애인복지체계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장애인복지법 제15(다른 법률과의 관계)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다른 법률을 적용받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전달체계 상에서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 전달체계가 아닌 정신보건 전달체계로 편재됨으로써 정신장애인은 국가의 장애인복지정책과 서비스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법적으로는 정신장애인의 복지를 장애인복지법에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위임한 것이지만, 정신건강복지법에서 장애인복지법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면 정신장애인에 대한 복지 차별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 때문에 복지차별 해소를 위해 장애인복지법 제15조 삭제와 정신장애인복지서비스 전달체계를 장애인복지체계로 일원화 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셋째, 장애인복지법 제15조 삭제와 더불어 정신장애인 맞춤형 복지제도를 담은 정신장애인복지법을 제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는 보건과 복지 양쪽의 유기적 서비스가 필요하고,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정신장애인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되면 장애인복지법의 적용을 받는 발달장애인이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제정을 통해 발달장애인 권리보호와 지원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충족해 가는 방법과 동일한 구조가 된다.

 

5. 자유권 담론에서 사회권(복지권) 담론으로!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정신장애인 인권 담론은 언제나 자유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덕분에 강제입원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의 인권보호는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보건법을 제정하면서 최우선의 정책 목표로 설정했던 지역사회정신보건은 아직도 너무도 척박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신장애가 있어도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으면서 생활할 집이 있고, 능력에 맞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소득이 보장되고, 정신장애에서의 회복을 지원하는 정신건강서비스가 지역사회 내에서 적절히 제공되지 못하면 불필요한 입원을 막을 수도, 사회적 입원 환자의 탈원화도 이뤄낼 수 없다. 정신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이 정신병원밖에 없다면 강제입원의 판단 주체가 의사든, 판사든, 위원회든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제라도 우리나라의 정신건강복지 영역의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회권 보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지역사회정신보건을, 정신장애인의 회복 지원을, 정신질환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함께 이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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