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4호] 장영인 - 그 날, 부모에게 돌아가겠다고 한 아동은 학대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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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 학대피해아동에게 ‘분리보호’ 여부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지난 6월 3일 충남 천안 집에서 9살 남자아이가 여행용 가방에 갇혀서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0월 3일에는 16개월 된 입양아가 또다시 학대로 사망하였다. 하나의 사건이 주는 충격이 연이어진 새로운 사건으로 덮어질 만큼,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학대사망아동은 훨씬 많다.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28명, 2019년 42명의 아동이 학대로 사망했다. 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학대자는 대부분 부모였으며, 사망한 아동은 거의 10세 미만의 어린아이였다.
이들 사망사건의 공통점은 몇 차례의 학대 신고가 있었으나,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그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하였거나 적시에 개입하지 못하여,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매일매일의 일상을 공유하는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아동의 보호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학대는 아동이 자신의 가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으며, 사적 공간에서 은밀하게 반복되면서 장기간 지속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사망한 아동이 단 한 번의 폭력으로 생을 마감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아동을 살릴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학대 정황이 감지되더라도 적극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가 학대 현장에 출동하여 학대의 심각성과 위험을 확인하고 응급조치로서 분리해내는 것이 아닌 한, 이웃의 신고로 가정방문하더라도 아동의 몸에 남은 멍 자국만을 근거로 아동을 강제 분리하는 것은 법적 근거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학대 사실을 부인하거나 아동의 분리를 완강히 거부할 경우에는 그 개입이 쉽지 않다.
이처럼 학대의 위험성을 학대행위자의 말만 듣고 판단하지 않도록, 선진국의 법들은 피해당사자인 ‘아동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아동학대범죄처벌법도 학대현장에서 아동을 분리보호 할 경우, 피해아동의 의사를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천안의 사망아동도 몇 차례 신고된 전력이 있으며, 사건 한 달 전에도 신고되어 기관담당자가 아동을 면담했다고 한다. 그 때 아동은 “내 실수로 머리를 다쳤고 엄마에게 맞은 것도 내가 잘못하여 그렇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분리여부에 대한 의사를 물었을 때 “그래도 그냥 집에 가겠다”라며 분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아동은 부모 곁에 머물게 되었으며, 결국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면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까?
잔혹한 학대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끔찍한 범죄에 여론은 들끓었다. 분노가 큰 만큼 관심의 초점은 항상 그러하듯이 학대행위자의 응징에 모아졌다. ‘강력한 처벌’이나 친권 제한, 특히 ‘징계권 삭제’를 비롯하여 모든 보호자에게 학대예방교육을 의무화하자는 등 실효성 없는 방안까지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학대사례를 보다 꼼꼼히 살피기 위한 ‘전담인력 확충’이나 ‘예산 확대’를 강조해왔다.
특히 이번처럼 아동의 의견을 반영하여 귀가조치한 것이 예기치 않게 아동을 사망케 하였다는 점을 들어, ‘피해아동 즉시분리’ 및 원가정보호 원칙의 재검토 의견까지 등장하였다.
이 모든 제안 중 그 어느 하나도 조속한 시일 내에 실행 가능한 것은 없다. 제도의 시설이나 개선에는 많은 논의 절차와 시간,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중 어느 하나가 실행된다 하더라도 유사한 상황에서 아동의 사망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사건이 발생하던 지난 6월 초의 시점으로 우리가 되돌아간다고 가정해보면, 이러한 난감함은 보다 뚜렷해진다. 이들 대책 중 어느 하나라도 사건발생 시점에 작동되고 있었다면, 과연 그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만약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서 우리가 그 당시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진정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적인 사건을 역전시킬 수 있을까?
몇 가지 거론된 대안들을 살펴보면, 우선, 강력한 처벌의 학대예방 한계는 명확하다. 이는 마치 사형제도가 살인사건을 근절시키지 못하고, 음주운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음주운전을 근절 내지 감소시키지 못하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강력한 형벌은 일상생활 속의 다양한 아동학대행위를 걸러내기에는 ‘강한 재질로 만들어진 엉성한 그물망’일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징계권의 삭제 등 부모권한을 제한하는 대책들도 아동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이러한 조치들은 부모의 통제나 강압적 훈육을 억제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아동존중의 관점을 점진적으로 정착시키는데 기여하겠지만, 부모들이 징계권을 법적 친권으로 인지하여 학대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학대행위의 직접적인 제동장치로는 한계가 있다.
한편 전문인력 충원 및 예산확대는 실무자들이 담당할 사례수를 줄임으로써 보다 세심한 검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그러나 아동을 만나는 최일선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법에 명시된 대로 아동의 의사를 물었을 때, 아동이 그냥 집에 남겠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아동의 비극을 바꿀 수 있는 다른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외상 등의 신체학대가 확인되었다면, 안전을 위해 아동을 우선 분리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분리보호 이후, 부모가 아동의 귀가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아동도 완강하게 가정복귀를 희망한다면, 언제까지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쩌면 아동은 단기간의 분리보호를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모르며, 비극적 사건으로부터 아동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일시적으로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장기간의 분리보호는 바람직한 대안인가? 학대에 의한 사망으로부터 아동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아동의 의사에 반하는 보호방식이 아동 최선의 이익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사건발생의 시점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지금과 같은 대응수단으로는 아동의 비극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처럼 보인다. 아동이 어떤 담당자를 만나서 어떤 보호결정을 받는가에 따라, 비극을 비껴갈 수도 또는 비극을 재반복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동의 안전이 우연에 맡겨지고, 아동의 생사도 아동의 운에 맡겨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상황은 아동의 안전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장치가 없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동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것은? - ‘듣기’가 아니라 ‘지원’
학대상황으로부터 아동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방비책은 없다. 특히 보호업무는 사람과 사람의 대면업무이다. 따라서 흔히들 ‘사람이 하는 일이 어찌 기계처럼 정확하고 일관될 수가 있겠는가’라며, 사례마다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대응과 결과를 당연시할 수도 있다.
물론 매 순간의 판단은 실무자 개인의 철학과 소신, 연륜에서 나오는 통찰 등에 의거할 것이므로 같은 답이 나올 수는 없다. 그러나 원칙이나 지침에 기반한 다양성과 전적으로 자의적 판단에 맡겨지는 무원칙의 혼란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전자는 원칙과 지침에 근거하여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공유하여 실무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후자는 그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그때그때마다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동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는 실무자들은 이번의 사망사건에 매우 당혹했을 것이다. 아동과 관련된 보호결정에 대해 더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그들의 판단 근거가 되는 것은 아동학대범죄처벌법이다. 동법 제12조는 경찰등의 담당자가 학대현장에 출동하여 피해아동보호를 위해 응급조치를 취할 경우, “피해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해아동의 의사를 존중”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동의 의사를 어떻게 존중할 지에 대해서는 하위법인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세부규정은 없다. 다만 시행령(제5조)은 응급조치로 아동을 시설등에 분리보호한 경우, “피해아동을 방문하여 아동이 처한 상황에 관한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고, 이때 “아동이 편안한 상태에서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응급조치상황에서 아동의 분리여부에 대한 아동 의사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법령의 규정은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훈련된 실무자들은 이번과 유사한 사건을 접할 경우, 아동을 별도의 편안한 공간으로 데리고 가서, 아동을 안심시키고 분리에 대한 아동의 의사를 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의견을 반영하여 분리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이는 적법한 조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정이 모호하고 세부적 실무지침이 없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쉽지 않고, 대안마련도 용이하지 않다. 포괄적이고 다양하게 분산된 대안들이 매번 반복될 뿐이다. 지난 6월의 시점으로 돌아가더라도 명확하게 다르게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실무의 준거기준이 없는 상황에서는 아동의 판단력 부족으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우려하여, 아동의 의사에 앞서 ‘우선 분리’함으로써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 제12조는 모든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안에 대한 의견표명권 및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법적, 행정적 절차에 있어서 청문권(the opportunity to be heard)을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의 해석 및 적용에 관하여 논란이 존재한다. 예컨대 과연 아동은 의사결정 및 이를 표현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 기준을 연령으로 정할 수 있나? 성숙도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등등. 그러나 다수의 아동학자들은 모든 아동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의사표현이 가능하므로, 이를 듣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발전시킬 필요를 강조한다.
학대현장에서 접하는 아동이 어릴지라도 자신의 욕구, 두려움, 미래, 주변관계 등을 고려하여 속내를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어린 아동에게는 학대부모도 무서운 존재이지만, 상상도 해보지 않았을 가정 밖의 공간이나 그곳에서의 삶은 더 두려울 수 있다. 따라서 아동의 의사를 묻기에 앞서, 아동의 두려움과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아동법(The Children Act 1989)은 이러한 아동의 발달적 특성을 고려하여, 아동의 의견(opinion 또는 view)이라는 용어 대신 ‘바람과 감정’(wishes and feelings)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람과 감정을 언제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 이를 아동에게 묻고 확인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지, 법조항을 근거로 하위규정 및 하위 지침 그리고 실무매뉴얼을 통해 방대한 분량으로 세부적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시스템에서는 보다 일관된 실천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아동의 의사존중은 학대피해아동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동이 일상적 삶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경험을 반복하는 것은 개인적 성장뿐만 아니라 건전한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자신을 돌보는 성인이 일상생활에서 아동과 관련된 무언가를 결정할 때, 아동의 의사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아동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방식에 익숙해질 것이고, 자신이 삶의 주체임을 인지해나갈 것이다. 나아가 자신도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아동의 의견존중과 참여가 아동의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적 기술과 타인에 대한 존중감과 관용을 발달시킨다는 것은 많은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이러한 관점에 서게 되면, 실무의 초점은 피해아동의 분리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묻기와 듣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맞추어지게 될 것이다. 예컨대, 아동이 집에 머물 것인지 정보를 얻으려 하기보다, 학대상황 전반에 대한 아동의 느낌과 생각, 바람을 들으려 할 것이고, 앞으로 진행될 일들에 대한 아동의 생각과 표현을 돕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아동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에 앞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들이 ‘정보에 근거한 결정(informed choice)’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실무의 초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과제 - 시스템을 통한 일관된 실천의 보장
학대현장에 달려간 실무담당자들이 일관되고 안정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 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보호와 달리, 공적 보호는 담당자의 개인적 의지나 선의의 태도에만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적보호 하의 아동을 만나는 다양한 영역의 실무자들은 공통의 일관된 관점과 원칙에 기반하여, 각각의 영역에서 요구되는 일정수준의 실무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시스템이란 추상적인 차원의 이념과 원칙을 아동의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고 구현하도록 해주는 장치를 의미한다. 예컨대 이념과 원칙을 담아내는 법률은 상위법에서 하위법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세분화되어야 하고, 이는 또다시 실무에서 적용가능한 지침으로 구체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천현장으로부터의 경험은 다시 환류과정을 통해 법체계와 제도, 조직과 인력의 내용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구축 과정은 지속적인 환류를 통해 발전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므로,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 이루어가는 과정에는 학대로부터 아동을 지키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담당인력들의 노력과 헌신이 필수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일시적인 예산투여나 무계획적인 조직이나 인력의 확대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예방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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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4호] 장영인.pdf (1.9M)
56회 다운로드 | DATE : 2020-11-21 01: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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