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3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발달장애 국가 책임제’를 요구하며 삼보일배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4월은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우는 행사가 연이어 있다. 지난 2일은 세계 자폐인의 날이었고, 오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돌이켜보면 2008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때를 전후해, 우리나라에서도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과 정책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사회활동에 대한 장벽을 없애는 데 기여했다. 장애인활동법을 통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게 활동보조의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동력이었던 신체장애인 운동은 외모와 모습이 다르더라도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고, 상호 배려하는 사회문화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소외된 장애인이 있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 특히 발달장애인이 그들이다. 이들도 다른 장애인이나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욕구, 희망, 슬픔, 분노가 있다. 그렇지만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욕구와 희망에 귀 기울이기보다 사회활동에서 배제하곤 하였다. 욕구와 희망을 전달하는 이들만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활동보조, 즉 의사결정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 상담, 재활, 치료, 요양에서도 특별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활동 참여도 가능해진다. 물론 발달장애인이 자기 삶을 살아가게 지원하는 서비스에는 안전장치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 인간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투입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개인별 욕구에 걸맞은 지원, 개성 있게 각자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지원에 필요한 재원이다. 그 재원은 발달장애인의 개인별 욕구를 알고, 잠재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많은 신규 전문인력의 채용에 사용될 것이다. 그 재원은 뉴딜정책의 21세기형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면서 유효수요를 만드는 방식의 재정투입이 아니라, 모두의 인권의식을 향상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 재원을 당사자, 가족, 국가가 협력하여 마련한다면 사회적 의미는 더 클 것이다. 재산관리가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재산을 국가나 공공기관이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관리하고, 개인별 욕구와 희망에 맞게끔 안정적으로 지출되게 지원하는 선진국의 공공신탁서비스가 바로 그 예이다. 선진국의 발달장애인 부모가 자신의 사후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사회가 발달장애인 개인이 삶의 여정을 헤쳐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와 가족의 재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국가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양질의 사회서비스 제공에 투입할 재정 여력을 가진다.
싱가포르는 이미 10년 전부터 우리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사회가족부에서 공공신탁회사를 설립해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공신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치매 어르신에게로 공공신탁서비스를 확장하였다. 홍콩 정부는 2018년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공신탁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 또 인구 500만명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재산관리가 어려운 장애인과 고령자를 위해 공공수탁자관청이 약 1조원, 인구 750만명의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공공수탁자관청은 약 6조원의 개인 재산을 수탁자로 관리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지난해 9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공공신탁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우리 실정에 맞는 공공신탁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올해는 시범사업도 하고 제도도 정비해서 하루빨리 발달장애인만이 아니라 정신적 장애인,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