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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낯섦을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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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지영
댓글 0건 조회 12,089회 작성일 21-09-2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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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류영재ㅣ대구지방법원 판사

하루는 단톡방에서 친구가 불안을 토로했다. 자기 동네 초등학교 등하굣길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이가 아이를 갑자기 밀어 넘어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엄마로서 우리 아이도 그렇게 다칠까 봐 너무 불안하다, 그를 격리하고 그가 다니는 

복지관을 초등학교에서 떨어진 곳으로 옮겨 정신장애인들과 아이들을 분리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이었다

onebyone.gif?action_id=3f90d943961d6848b7a8f88e6a9b546예전 같았으면 하소연을 듣는 즉시 따따부따 반박과 훈계를 했을 터였다. 조현병은 관리가 가능한 정신질환이고 타인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환자들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범죄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으로 따지면 일상에서 숱하게 마주치는 비정신장애인들이 

훨씬 위험하다, 그 조현병 환자가 상습적으로 아이들을 해친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위험하다고 볼 수 없다, 

조현병 환자가 아이를 넘어뜨렸다고 사회격리를 시켜야 한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공평할 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남아 있을 이가 별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등등.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타인에게 해악을 

끼쳐 형사재판을 받게 되는지 숱하게 봐온 입장에서 조현병 환자의 위험성에 대한 편견은 대단히 비합리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날은 쉽게 반박하지도 훈계하지도 못했다. 그 조현병 환자를 격리시키거나 복지관을 옮기는 조치가 취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법 실무상으로도 불가능해 보였지만, 동시에 같은 초등학생들을 자녀로 둔 엄마로서 자녀의 등하굣길이 걱정된다는 친구의 

불안에 공감했다.

반박하거나 훈계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일 정신장애를 겪지 않는 이가 아이를 밀어 넘어뜨렸다면 친구는 그 등하굣길을

불안하다고 느꼈을 것인가. 그랬다면 내가 그 친구의 불안에 공감했을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비정신장애인과 함께 사는 위험은 

인지하지 못하면서 조현병 환자에 대해서는 그를 상습적 위험인자라고 느끼는가. 이러한 인지편향은 가용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자신이 미리 알고 있는 정보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로 분류된다고 한다.

한편, 위와 같은 인지편향은 낯섦으로 인해 더욱 쉽게 발생한다. 즉, 비정신장애인인 친구와 나는 정신장애인이 낯설기 때문에 그가 아이를

밀어 넘어뜨렸다는 정보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한 후 그가 앞으로도 아이를 반복하여 해할 위험이 높은 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불안해한 것이다. 

비정신장애인이 피고인으로 선 재판에서 그들의 전과만으로 그들의 위험성을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훈련받아온 나조차도 일상에서 

맞닥뜨린 낯섦 앞의 인지편향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정리한 상태에서도 내가 만일 친구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자녀들의 등하굣길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감정은 이성으로 잘 통제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자꾸 머리에 맴돈다. 할 수 있는 최선은 나의 인지적 오류를 

계속 되뇌며 내 감정이 행동을 이끌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일 테다. 친구의 사례를 예로 든다면, 초등학교 등하굣길의 일반적인 안전관리를 

당분간 더 강화해달라고 학교나 지자체에 요청할 수는 있더라도 이를 넘어 그 조현병 환자의 격리나 복지관의 이전을 요청하지는 않는 것.

개인적 경험을 이리 장황하게 설명하는 까닭은, 많은 영역에서 낯섦은 비슷한 경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몇년 전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들

부터 최근 입국한 아프가니스탄인들까지, 난민과 이슬람교라는 두가지의 낯섦이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우리 사회는 난민과 이슬람에 대한 

몇가지 정보를 과대평가하여 그들에 대해 ‘테러집단, 극단적인 여성 차별, 가난하고 못 배운 야만인들’ 등의 편견을 형성하고 그에 따른 

부정적이고 강한 감정들을 발생시켰다. 나도 그들이 낯설다. 따라서 낯섦의 메커니즘에 따라 나도 일상에서 그들을 맞닥뜨리면 편견과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내가 우리 사회의 난민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감정을 질타할 자격은 없다. 다만, 낯섦을 

극복하기 위해 최대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럼에도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 불쑥거릴 때에는, 절실히 되뇔 수밖에 

없다. 부디 감정이 행동을 이끄는 데에서만 벗어날 수 있기를.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1409.html#csidx7d2885202646c58ae2c16495a2f8e06 onebyone.gif?action_id=7d2885202646c58ae2c16495a2f8e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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