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우리 애가 죽이는거 봤어?"…논란의 KBS 조현병 영화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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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10.05 10:59
업데이트 2021.10.05 11:18
KBS가 투자‧제작한 조현병 소재 영화 ‘F20’이 인권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F20’은 KBS가 단막극 시리즈 ‘드라마 스페셜’을 확장한 영화 프로젝트 ‘TV 시네마’ 중 극장에서 선보이는 첫 사례로, 6일 개봉한다. 단막극 ‘모단걸’ ‘고백하지 않는 이유’ 등을 만들어온 홍은미 KBS 드라마 PD가 연출을 맡았다. 서울대생 아들의 조현병을 감춰온 애란(장영남)은 역시 조현병 아들을 둔 지인 경화(김정영)가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자신까지 들통날까 봐 불안에 휩싸인다. 조현병 아들을 둔 두 엄마가 이웃들에게 받는 눈총과 따돌림 속에 애란이 광기에 내몰리는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룬다.
개봉 전 간담회에서 홍 감독은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 배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그 병을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고서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조현병을 앓고 계신 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 둘 사이의 균형 잡는 일에 무엇보다 고민했다”고 밝힌 터. 지난달 30일 시사로 공개된 영화는 그런 균형 잡기에는 다소 실패한 듯 보인다.
"조현병 환우·가족 인권침해" 국민청원 등장
홍보사에 따르면 순제작비 7억원이 투입된 이 영화의 극장 손익분기점은 20만 관객이 목표다. 사전 홍보문구부터 장르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세간의 편견을 이용한 듯한 인상이 강하다. 예고편엔 아파트 단지에서 불에 탄 고양이 사체가 발견되자 입주민들이 “엊그제 새로 이사 온 112호, 그 집 아들이 ‘이거’랩디다, 이거. 조현병” “이게 보통 위험한 병이 아니더라고” 수군대는 모습이 부각됐다. 포스터엔 “사람들한텐 그냥, 미친 게 죄야” “우리 애가 죽이는 거 봤어요?” 등의 자극적인 문구가 적혀있다. 조현병 질병분류코드(F20)를 제목으로 삼은 것에 대해 제작진은 “하나의 질병일 뿐, 의료적인 관리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가장 중립적인 표현”이어서라 설명했지만 자칫 극 중 묘사가 조현병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편견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 영화가 “조현병 환우와 가족에 대한 극심한 인권 침해”라며 “제작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이미 한 질환에 대해 공격적이고 선정적인 출발을 하고 있다”고 시정 요구가 올라온 이유다. “공익을 우선해야 하는 공영방송인 KBS에서 제작‧방송 예정”이란 점을 짚으면서다.
"스릴러만 부각…조현병 재현 세심하지 못해"
영화를 본 전문가들도 우려를 내놨다. 특히 압박감에 시달리던 애란의 캐릭터가 위협적으로 돌변하는 대목에서다. 오진우 영화평론가는 “심리극에서 공포극으로 급변하면서 사이코패스의 탄생기를 보는 듯해 당혹스러웠다”면서 “조현병 재현이 세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너무 스릴러만 부각해서 기능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영화평론가이자 심리학자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전임교수는 “스릴러를 풀어가는 연출 자체는 무난하고 장영남 배우도 열연했다”면서도 “조현병에 관한 주변의 편견을 다루겠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조현병은 매우 위험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남긴다”고 모순점을 지적했다.
또 “애란이 너무 쉽게 광기에 빠지는 지점은 설득이 안 된다”면서 “한부모 가정 여성이 아들에게 갖는 집착이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는 오래된 편견, 여성이 여성과 연대하지도 못한다는 시대착오적인 클리셰가 많이 녹아있다. 우리나라 학력중심주의 등 광기에 대한 편견을 다루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편견을 끌어들인 이상한 균열이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KBS TV로도 방송 예정…"지상파 방영 부적절"
‘F20’은 오는 29일 TV로도 방영될 예정이다. 최근 TV 드라마가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와 경쟁하게 되면서 표현 수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펜트하우스’(SBS)의 적나라한 살인 묘사, ‘마우스’(tvN) 아역 배우의 사이코패스 연기 등이 대표적 사례다. KBS도 ‘TV 시네마’를 론칭하며 “한국 드라마 경쟁력 강화 및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 심 평론가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지상파 방영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면서 오히려 “조현병 환자들에 관한 인식이 개선되는 담론이 필요하다”고 했다.